두번째 생일
마감 중에 저녁거리를 구하러 나갔습니다. 며칠 동안 집에 틀어박혀 알찬 기념호를 위해 컴퓨터와 씨름하다가 바람도 쐴 겸 와이프와 운전을 하고 나간 길에 금호동에 있는 금남시장을 지나다가 그녀석을 봤습니다. 자동차들로 들어찬 차도 한가운데서 사람들을 피해 도망가던 약간 흐린 색깔의 요크셔테리어는 겁도 없이 2차선 도로 중간을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주인으로 보이는 여성은 녀석의 빠른 걸음을 쫓아가지 못했고 지나가던 남학생 둘이 그 아이를 잡으려고 했지만 겁에 질린 녀석을 잡기에는 무리였습니다. 녀석은 아슬아슬하게 길 가운데를 달리고 있었고 우린 차로 녀석을 앞질러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과 같이 그 아일 잡을 계획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끝내 동호대교가 보이는 큰 길까지 도망갔고 왕복 4차선 거리를 질주하던 자동차들은 그 아이의 비참한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른채 바삐 달리고 있었습니다. 난 터널로 달려가던 녀석을 앞질러 무작정 비상등을 켜고 차를 세운 후 내려서 직전에 내린 와이프와 그 아이를 잡으려고 했지만 그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시내 방향 터널 안에서 우리의 포위망을 빠져나간 녀석은 반대편 터널로 도망갔고 난 그 아이가 몇 초 후에 당할 끔찍한 사고를 상상하면서 비명을 지르며 쫓아 갔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 아이는 차에 치지는 않았지만 결국 우리의 시야를 벗어났고 우리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듯 했습니다. 난 더 이상 교통정체를 유발시키고 있을 수가 없었고 우린 차를 타고 그 주위를 얼마간 더 돌며 그 아이를 찾다가 포기하고는 말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거웠고 그 아이가 지금 얼마나 무섭고 배고프고 막연한 마음일까 생각하니 내 마음도 먹먹해 졌습니다. 오보이!가 두번째 생일을 맞았습니다. 오보이!를 창간하면서 썼던 에디터스 레터에 난 ‘오보이!는 성공할 수 있을까요?’ 라는 글을 썼습니다. 동물복지와 환경을 얘기하는 패션잡지를 표방한 오보이!는 과연 성공적으로 두번째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요? 많은 분들이 메일과 블로그, 트위터를 통해 응원의 글을 보내주시고 동물복지나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이 없던 분이 오보이!를 통해 좋은 생각을 가지게 됐다며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 주실때 마다 충전이 됐고 더 희망적으로 다음 호를 준비할 수 있는 힘이 났습니다. 주위의 지인들이 놀랍다며 오보이!의 분전을 축하해 주고 광고주들이 광고문의를 하고 화보를 의뢰할 때 마다 매체로 인정받고 있는 오보이!가 스스로 대견스러웠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스타들이 지인과 기획사를 통해 오보이! 잘 보고 있다며 화보 한 번 찍고 싶다고 연락이 올 때 마다 정말 신기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로 다행히도 광고도 순조롭게 수주가 되고 훌륭한 지인들의 도움으로 좋은 글과 원고도 받으며 오보이!를 만들고 있습니다. 각종 매체에서 인터뷰 섭외가 들어왔고 많은 잡지와 신문들이 오보이!에 대한 기사를 실었습니다. 오보이!는 성공적인 걸까요?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요? 아직도 금호동 차도 한복판을 겁에 질려 달려가던 그녀석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갈 곳 잃은 작은 강아지 하나 구하지 못한 무력감에 힘이 빠집니다. 오늘도 길 위에 버려질 수 많은 작은 생명들을 생각하면 오보이!가 과연 뭘 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열악한 환경에 수천마리의 유기 동물들이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동물보호소들 생각을 하면 내가 너무 탁상공론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멀쩡한 자연을 훼손하고 구비구비 흐르는 강물을 일직선으로 만들고 친환경이라고 선전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치밉니다. 사실 아직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오보이! 생각을 하면 더 힘을 내야겠다고 다짐해 보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그래도 힘을 내겠습니다. 세상을 아주 조금밖에 바꾸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오보이!는 힘을 내겠습니다. 그런 작은 힘들이 모여서 구해지는 생명이 하나라도 있다면, 지켜질 자연이 조금이라도 된다면 오보이!는 힘을 내겠습니다. 여러분도 많이 도와주세요. 나 하나가 무슨 힘이 있을까 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여러분이 도와주세요. 오보이!도 여러분 믿고 더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이제 막 두 줄의 나이테를 새긴 오보이! 많이 사랑해 주세요. 김현성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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