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이! 10월호 특집은 아날로그 입니다. 이번 호의 에디터스 레터는 아날로그 특집을 준비하며 떠올린 나의 음악에 대한 추억 얘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음악을 정말 좋아합니다. 음악은 생활의 일부였고 틈만 나면 음악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언젠가 내가 처음으로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에서 살게 되면서 밑에 층에 사는 사람이 시끄럽다고 하기 전까지는, 언젠가 MP3라는 파일로 사람들이 음악을 들으면서 LP는 고사하고 CD마저도 잘 듣지 않게 되기 전 까지는요. 정말 예쁘게 생긴 하얀 아이팟에서 나오는 감각적인 최신음악들에 난 집중을 잘 못합니다.
내가 음악이라는 것을 처음 접하고, 음악을 좋아하게 된 건 국민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사우디아라비아의 건설현장에 계실 때 사온 아바의 카세트테이프를 듣고 나서부터 입니다. Sony cf580 카세트 플레이어를 통해 흘러나오던 Dancing Queen을 들으면서 난 문화적 충격을 받았고, 그 이후로 음악은 내 인생을 많이 바꿔놓은 것 같습니다. 난 비지스, 보니엠, 홀앤오츠, 올리비아 뉴튼 존 등을 닥치는 대로 들었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음악에 대한 집착은 더 커져만 갔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접한 퀸은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 중의 하나이고 용돈이 모일 때마다 신촌에 있는 목마레코드에 부리나케 달려가 사 모았던 퀸의 LP들은 아직도 내 방 선반에 고스란히 꽂혀있습니다. 2학년 때 빌리조엘의 신보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한 달을 넘게 매일같이 달려가던 학교 앞의 작은 레코드 가게도 생각이 나네요. 난 황학동의 중고 LP가게들을 전전하며 원판과 해적판을 사 모았고 지금도 검고, 크고, 동그란 그 판들은 내 재산목록 1호입니다. 그 후로 핑크플로이드가 내 마음 깊숙이 들어왔고, 레드제플린 존보냄의 육중한 드럼소리는 아직도 내 기억 속에서 쿵쾅대고 있습니다. 핑크플로이드의 Great gig in the sky를 들었을 때의 그 전율과 Sultans of swing'에서 물 흐르듯 흘러나오는 마크노플러의 기타와 보컬의 매력은 지금도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난 70년대와 80년대를 음악과 함께 자랐고 그 음악은 지금도 내 안에 뿌리 깊게 박혀 있습니다. 'Thank you for the music'에서 누가 음악 없이 살 수 있냐고 아바의 아그네사가 노래 불렀죠. 지금도 그 노래를 들으면 이상하게 벅차서 눈물이 나곤 합니다. 난 음악을 좋아하는 걸까요, 아니면 추억을 놓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난 내가 자라나던 시절의 음악을 좋아하는 걸까요, 아니면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최신 기술과 첨단 문화의 변두리에서 투정을 부리고 있는 걸까요? LP의 소리가 훨씬 좋다고 얘기하는 건 구닥다리 아저씨의 고집일까요? 파일로 음악을 듣는 건 못할 짓이라고 얘기하면 소리를 듣지 말고 음악을 들으라고 나에게 얘기할 건가요? 물론 내 주변에는 음악보다 고급 오디오의 소리에 집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난 허황되게 비싼 고급 기계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그저 내가 자라나면서 들어 온 LP의 따뜻한 감성이 좋을 뿐인데 그건 너무 사치스러운 생각일까요? 사실 음악을 어떤 기계로 듣느냐가 뭐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요? 작은 트랜지스터라디오에서 나오던 김추자의 노래도 얼마든지 강렬하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지금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는 많은 분들도 먼 훗날에 더욱 더 첨단화 된 기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아이팟으로 음악 들을 때가 좋았다고 하시겠죠? 아날로그는 추억입니다. LP는 현재의 아날로그입니다. 아이팟은 미래의 아날로그입니다. 아날로그 특집은 디지털을 부정하는 기획이 아닙니다. 디지털의 반대되는 개념으로서의 아날로그가 아닌 추억을 떠오르게 하고 현대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특집입니다. 낡은 것은 버릴 것이 아니라 지키고 가꿔야 할 무엇입니다. 아날로그는 최신제품과 첨단기술에 끌려 다니지 않아도 얼마든지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줍니다. 아날로그는 다음 달에 나오는 최신 전자제품보다 더 중요한 게 많다는 걸 얘기해 줍니다. 아날로그는 급변하는 유행에 민감하지 않아도 당신이 얼마든지 멋있다고 얘기합니다. 첨단,최신 제품에 목메지 않고 오래된 것을 지키고 가꾸면서 잘 활용하면 쓸데없는 낭비도 줄이고 지구도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요? 가끔은 뒤도 한 번씩 돌아보세요.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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