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이은 오보이!의 두 번째 도시특집은 베를린입니다. 베를린에서의 7일간의 체류도 파리에 이어서 파란만장, 좌충우돌, 동분서주의 연속이었습니다. 제일 큰 시련은 그래도 다행히 가장 첫 날 일어났고 그 이후로 더 한 일을 겪지 않은 걸 유일한 위안으로 삼고 있는데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항상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큰일도 아니고 심각한 상황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우린 환승공항인 암스테르담에서 넋 놓고 있다가 비행기를 놓쳤고 공항에서 밤을 샜습니다. 그저 짜증나는 건 공항내의 호텔에 방이 없었고 공항이 바깥과는 달리 아주 추웠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일의 발단은 우리가 갈아타야 할 비행기의 시간이 너무 여유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비행기 시간은 무려 세 시간이 남아있었고 마음의 여유가 있었던 우리는 게이트가 바뀌었다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시간을 때우고 있었습니다. 분명 게이트가 변경됐다는 방송이 나왔을 테지만 우리는 아무도 방송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또 시간이 되니 사람들이 와서 줄을 서는 걸 보고는 아무 생각 없이 그 줄에 합류했습니다. 내 티켓을 받아든 항공사 직원은 게이트가 변경됐다는 사실을 알려줬고 시간은 거의 다 됐지만 너무나 완벽하게도 변경된 게이트는 우리가 있던 곳의 정반대 방향, 공항의 맨 끝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숨차게 달려갔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일행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도착했을 때 너무나 당연하게도 게이트는 닫혀있었고 그곳에 있던 직원은 우리 심정은 아는지 모르는지 환승창구가 있는 곳을 무표정하게 가리켰습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도착한 창구에서 환승직원이 말했습니다. 오늘은 비행기가 없고 내일 아침 비행기의 대기명단에 넣어줄 수는 있다. 내일도 비행기를 못 탈수 있다는 그 직원의 말에 힘이 빠졌지만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는 듯 했습니다. 우리는 아주 맛없는 네덜란드제 피쉬버거를 먹고 공항내의 호텔을 찾았지만 앞에서 얘기한대로 우리에게 내어줄 방을 호텔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공항에 꼼짝없이 갇힌 우리는 긴 의자가 있는 곳을 찾아서 누워 노숙자들처럼 잠을 청했지만 그렇게 더운 바깥과는 달리 반팔티셔츠 하나만 입고 있던 우리들에게 공항은 너무 추웠습니다. 이미 지불한 베를린의 호텔요금을 생각하니 더욱 속이 쓰리고 더욱 추워지더군요. 놀러온 게 아니었던 나는 다음날을 위해서 잠을 청했지만 추워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오들오들 떨던 나는 지금 생각해보면(그 당시에도 일행들에게 얘기했더니 뒤로 넘어가더군요.) 조금 황당하고 우스꽝스럽지만 그래도 꽤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배낭 안을 뒤졌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한 나는 보온성이 뛰어나다는 신문지를 찾아보았지만 버려진 신문지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신문지를 찾아서 20여분을 헤맸지만 야속하게도 공항은 너무 깨끗했습니다. 난 갑자기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내가 왜 화장실로 갔을까요? 난 화장실로 가서 세면대에 있는 종이타월을 수 십장 꺼내 티셔츠 안에 구겨 넣었습니다. 누런색의 종이타월은 거칠고 꺼끌꺼끌했지만 이것저것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뭐 보는 사람도 없었고 다시 그런 일을 당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또 할 것 같지만 보기에 그렇게 아름다운 장면은 아니었을 겁니다. 종이타월의 보온성은 꽤 뛰어났고 다행히도 난 암스테르담의 공항에서 잠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의 얘기는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줄이겠습니다. 그저 우리는 다음 날 늦게나마 무사히 베를린에 도착했고 7일 동안 큰 사고 없이 촬영하고 서울로 돌아왔으니까요. 유럽전역의 이상기후로 36도까지 올라간 뜨거운 베를린을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촬영을 해야 했던 것도, 힘들게 3시간을 걸어서 찾아간 바우하우스 박물관이 문을 닫아서 허무했던 것도, 베를린에 오기 직전 한 촬영의 후반작업을 밤에 호텔에서 해야 했던 것도, 작업한 데이터를 웹하드에 올리는데 거의 386시대의 인터넷 속도 때문에 밤을 새며 고생했던 것도 지금 생각하면 다 별거 아니네요. 비록 겨우 7일 동안 찍은 낮선 도시의 단면들이지만 이방인의 눈으로 본 도시의 풍경을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즉흥적으로 느낀 단상들과 주관적인 조각글들이지만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유럽도 지금 온난화에 따른 이상기후로 여러 곳에서 징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36도의 뙤약볕 밑에서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하루 종일 걸어 다닌 기억은 그렇게 유쾌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작은 생활습관 하나하나가 더욱 중요하게 느껴진 출장이었습니다. 오보이! 재미있게 읽으시고 에너지 절약과 환경보호, 동물 사랑하는 친환경 여름마무리 하시기 바랍니다. 김현성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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