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얘기겠지만 파리는 많은 사진가들과 패션잡지 기자, 그 밖의 패션에 관련된 사람들이 많이 가는 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나도 10년 넘게 일하면서 파리 출장이 제일 많았습니다. 1년에 두 번의 출장이 잡혔던 적도 있었을 정도로 파리는 내게 친근한 도시입니다. 오보이!를 기획하면서 1년에 한 번 쯤은 세계의 도시를 한곳씩 선정해 특집으로 꾸미자고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1순위로 떠오른 도시도 파리였습니다. 그렇게 오보이!의 6번 째 특집은 파리로 정해졌고 그동안의 출장과는 너무나도 다를지 몰랐던 나는 한 달 전부터 파리 원정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간단하게 사진가의 입장에서 그동안의 해외 출장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너무 간단해서 설명하기도 좀 그렇습니다. 출장 의뢰를 받으면 여권사본을 보내 주고 에디터와 간단하게 미팅 한 번 하고 현지에 가서 촬영장소를 물색하고 촬영을 하고 돌아옵니다. 다녀오면 사진을 정리하고 잡지사와 협의를 거쳐 최종본을 넘겨주고 나면 출장은 공식적으로 끝납니다. 사람의 일이라는 게 입장에 따라 많이 다르다는 건 알지만 이번 출장으로 그동안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 하는지 조금은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내가 이번 출장을 위해 한 일들은 나에게는 정말 생소했고 부딪치며 해내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스텝을 정하고 예산을 책정하고 항공권을 예약하고 숙소를 알아보고 현지 모델을 섭외하고 무엇보다 뭘 어떻게 찍고 취재할지 정하고. 한가지도 쉬운 일이 없더군요. 해보니 사진 찍는 일이 제일 쉬웠습니다. 조금이라도 싼 비행기 표를 위해 한 달 전부터 바쁜 스텝들의 일정을 확정짓는 것도, 화보 촬영을 겸하기 위해 마음에 드는 실내구조의 아파트를 인터넷에서 찾고 집주인과 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숙소를 정하는 것도, 패션주간이 한창이라 촬영이 가능한 모델이 거의 없는 가운데 에이전시마다 메일을 보내며 모델을 섭외하는 것도, 시내촬영을 위해 필요한 버스를 예약하고 스텝들을 이끌고 끼니마다 식당을 찾아 밥 한 끼를 먹는 것 까지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컴맹이라 인터넷으로는 쇼핑도 못하는 내가 프랑스의 에이전트를 통해 천신만고 끝에 찾은 아파트 주인과 메일로 연락하고 얼굴도 모르는 그가 보내온 계좌번호를 은행으로 들고 가 보증금을 송금을 했지만 파리에 도착해서 주소를 찾아가 그와 만나서 열쇠를 받고 아파트가 실재한다는 걸 확인했을 때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은 건 내가 구세대라서 그렇다고 하고, 모델이 없어서 쩔쩔매며 전날까지 에이전트에 메일을 보내(답답하게도 그들은 모든 업무를 메일로 처리하더군요.) 재촉을 하고 오디션에 나타나지 않는 브라질 모델을 원망하며 발을 동동 구른 것도 흔한 일이라고 쳐도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이번 출장은 텔레비전 보면서 전화 못 받는 단순한 뇌구조를 가진 나에게는 벅찬 일이었습니다. 이상기후로 엄청나게 추웠던 파리의 거리에서 게릴라식으로 화보를 찍는 일도 스텝들과 얇디얇은 여름옷을 걸친 채 포즈를 잡아야 했던 모델들에게도 고역이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파리에 머물면서 잡지 한 권을 채울 내용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가장 큰 부담으로 다가왔고 화보 하나정도 찍을 수 있는 일정에 화보 세 개와 각종 사진들, 취재거리들을 만들어야 하는 의무감에 걱정이 많았지만 피곤해서 그랬는지 잠은 참 잘 오더군요.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개선문 꼭대기에도 올라갔고(오로지 촬영을 위해)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마레지구의 구석구석을 다녔고 화보의 배경을 찾아 골목골목을 누볐습니다. 나에게는 오보이!를 혼자 만드는 것만큼 파리 출장을 기획하고 다녀오는 것도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괜히 좋은 곳에 다녀와서 징징대는 것 같네요. 물론 다시 가 본 파리는 여전히 좋았습니다. 조상을 잘 만난 운 좋은 파리지앵들은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도시를 활보했고 낭만의 도시 파리에 온 관광객들은 에펠탑과 루브르, 아침의 크루아상과 오후의 커피를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파리를 좋아하는 나에게도 파리는 여전히 매력적인 도시였고 조금 힘들었지만 언제라도 다시 가고 싶은 도시 파리가 벌써 그립기까지 하네요. 식당에 앉아있는 우리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가운데 식탁위에 있던 새로 산 아이폰을 우리의 정신을 쏙 빼놓은 집시들에게 도둑맞은 나의 어시스트 상미도 파리가 그리울까요? 김현성 Comments are closed.
|
|